[김희경의 7과 3의 예술]’브람스를 좋아하세요?’…낭만의 이름, 브람스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작은 설렘이 느껴집니다. 프랑스 출신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959)에 나오는 한 장면인데요. 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분들도 제목은 한번쯤 들어 보셨을 것 같습니다.이 작품은 자유분방한 연인 로제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39세의 여인 폴, 그리고 14살 연상의 폴을 사랑하는 청년 시몽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폴은 브람스 얘기를 꺼내며 수줍게 다가오는 시몽으로부터 조금씩 위로 받게 됩니다.여기서 브람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독일 출신의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를 가리키는 것인데요. 작가는 왜 수많은 음악가들 중 브람스를 선택했을까요.이 질문은 소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후에도 브람스를 내세운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요. 잉그리드 버그만, 안소니 퍼킨스 주연의 영화 ‘이수'(1961)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영화 OST로 브람스의 ‘교향곡 3번’ 3악장이 사용돼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죠. 슬픈 느낌의 3악장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쓸쓸해지는 것 같습니다.국내에서도 브람스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요. 지난해 SBS에선 클래식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방영됐습니다. 브람스 인물 자체를 소재로 삼은 오페라 ‘브람스’도 오는 5월 국립극장에서 열립니다.’좋아하다’라는 단어가 늘 함께 하는 브람스. 그는 어떻게 낭만의 상징이 됐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시는 분들도 꽤 많을텐데요.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 그의 부인 클라라 슈만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브람스에 대해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바흐, 베토벤과 함께 독일의 ‘3B’ 음악가로 꼽힙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 자체가 브람스가 얼마나 대단하고 심오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는지 잘 보여줍니다.그는 어릴 때부터 악기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는데요. 함부르크 악단의 연주자였던 아버지 덕분이었죠. 그는 재능을 일찌감치 드러냈고, 열 살에 공개 연주회를 열기도 했습니다.하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10대 후반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야 했는데요. 그러다 건강을 해쳐 요양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는 정규 과정의 학업도 중단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에두아르트 레메니, 요제프 요아힘 등을 잇달아 만나며 음악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그가 스무 살이 되던 1853년,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집니다. 요아힘의 소개로 슈만과 클라라 부부를 알게 됐죠. 이들과의 만남은 브람스의 음악 인생과 삶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슈만은 이미 뛰어난 음악가로 명성이 자자했고, 음악평론지 <음악신보>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클라라도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죠. 이들은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 지원했습니다.슈만은 그의 스승이 되었으며, <음악신보>에 브람스에 대한 글을 써 그가 이름을 알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클라라도 브람스에게 많은 영감을 줬죠, 그리고 브람스는 스승의 아내이자 자신보다 14살 많았던 클라라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됐습니다. 앞서 소개한 소설에서 폴이 시몽보다 14살 많은 나이로 설정된 것도 이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죠.브람스의 마음은 아주 깊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을 지키며 묵묵히 그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슈만이 음악 활동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로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브람스는 가족들과 함께 슬퍼하며 도왔습니다.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클라라와 친구 관계로 남았죠. 브람스는 이후 다른 여성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끝내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요. 클라라에 대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습니다. 닿을 듯 닿지 못한 애달픈 마음.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려 했던 따뜻함. 그렇기에 브람스는 훗날 낭만의 대명사로 남은 게 아닐까요.

커다란 사랑,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브람스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896년 클라라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죽음에 임박하자 그는 가곡 ‘4개의 엄숙한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 곡엔 비통하고 절절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죠.브람스는 앞서 슈만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독일 레퀴엠’을 만들었는데요. 이 곡의 작업은 잠깐 중단됐다가, 어머니의 임종 이후 재개됐습니다. 슈만과 어머니를 함께 기리는 이 작품은 바흐의 ‘미사’, 베토벤의 ‘장엄미사’를 잇는 뛰어난 종교음악으로 꼽힙니다.브람스가 사랑의 감정을 다 쏟아내지 않고 묻어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의 성격은 다소 내성적이고 차분했습니다. 브람스의 음악 철학도 이런 성격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독일 음악계는 즉흥곡, 광시곡 등 자유롭고 감정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급진파와 무게감 있고 절제된 음악을 추구하는 신중파로 나눠져 있었습니다.브람스는 슈만에 이어 신중파의 대표주자가 되었는데요. 화려한 기교로 대중의 환심을 사는 것 보다, 더디더라도 꾸준히 자신만의 미학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숙련된 기술이 없는 영감은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고 말했는데요.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연마하는 장인의 모습이 연상됩니다.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요. 브람스는 189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클라라의 죽음 이후 딱 1년 만이었죠. 그는 클라라가 위독하다는 얘기를 듣고 급히 기차를 탔지만, 기차를 잘못 타는 바람에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브람스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간암이었지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큰 슬픔으로 좀 더 일찍 클라라를 따라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낭만적이었던, 그러나 그만큼 고독했던 브람스의 삶이 애잔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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